방문을 환영합니다.


나눔터 최근글

더보기


목장나눔터 최근글

더보기
나눔터
구원 간증
2016.11.23 05:48

돌아온 탕자 이야기

조회 수 1361 추천 수 0 댓글 0

 안녕하세요 요르단 목장에 목원으로 있는 양현민입니다. 


제 신앙을 고백하는데 제가 어떻게 살았는지 설명드리지 않는다면 도저희 제 짧은 말솜씨로는 제대로된 간증을 하기가 힘들 것 같아, 짦게나마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할머님이 권사님시고 아버지 어머니 두분 다 집사님으로 하나님을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 축복속에 유아세례를 받았습니다. 당시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건축회사는 날이 갈수록 번성하여 승승장구하였고, 저는 나름 부유한 집안에서 부족한거 없이 이쁨받으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끝날거 같지 않았던 화목한 저희 가정에 시련이 닥쳐오기 시작했습니다. 때는 96년 말, 대한민국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을 당시, 6살이였던 저는 길을 건너다 달려오던 오토바이에 치이는 큰 사고를 당하고맙니다. 머리를 심하게 다쳐 첫수술에 투입된 의사만 12명, 수술 성공확률은 50%로 실패하게 되면 식물인간, 성공하게 되더라도 사고 당시 다친 머리에 이물질이 들어갔다면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쳐도 몸에서 열이 날 것이고, 그러한다면 목숨을 장담할수 없는 상황이였습니다. 수술은 다행히도 성공적이였습니다. 


경제가 최악으로 치닫던 시기에 회사를 운영하시던 아버지는, 저의 수술이 끝나고 바로 다음 날 일본으로 중요한 출장을 가셔야하는 상황이였죠. 공항에 도착해 탑승을 기다리던 아버지에게 병원에서 전화 한통이 옵니다. 제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으니, 맘에 준비를 하라는거죠. 회사에 운명이 달려있던 출장이라 어쩔수없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아버지는 결국 비행기 안에서 화병으로 쓰러지시고, 출장은 물거품이 납니다. 다행히 보시다시피 저는 잘 회복했습니다. 저와 같은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는 아이러니하게도 링게를 끌고 제가 아버지를 병문안을 가게되는 상황이 온거죠. 


제 아버지는 그 후 6개월동안 어떻게든 회사가 안 망하게 버텨보셨습니다. 그러던 그때, 할아버지께서 심장마비로 돌아다시게 됩니다. 국가 유공자셨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바로 그 달부터, 나라에서 나오던 연금마저 끊기게 된거죠. 많은 일이 갑자기 일어나자 어머니는 버티시질 못하시고, 이혼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때 제 나의 8살, 저는 어머니를 잃게 됩니다. 


그 후 어떻게든 생계를 책임져야했던 아버지는, 빚쟁이에 쫒기며 힘들게 버텨오시지만, 결국 한국은 살수 있는 나라가 아니라고 판단, 가족을 이끌고 호주로 오게 됩니다. 그때 제 나의 12살 이었습니다. 호주에 살면서 우여곡절도 많고 언어의 벽, 또 경제적으로 힘들었던건 당연히 있었지만, 그래도 가족끼리 의지하며 잘 적응해 나가 지금의 제가, 저의 가족이 있는거 같습니다. 


모두가 그렇듯이 크고 작은 일 모두 얘기하면 끝도 없죠. 이렇게 조금은 파란만장하고 곡선많던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적어도 너희는(여기서 너희는 저와 제 형을 말합니다) 교회를 반드시 나가라 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빠짐없이 주일을 지키며 나름 믿음을 키워왔던거 같습니다. 학생부 시절엔 서기로써 봉사했고, 청년땐 찬양팀, 멀티미디어, 아동부 교사등 여러가지 방식으로 교회에 봉사해 왔고, 그러는 중 나름 진심으로 예배도 드리고, 주님을 만나 은혜도 받았던거 같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머리가 커가면서, 더욱 믿음이 자라나기는 커녕, 오히려 점점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규모가 성장하는 교회안에서 어른들은 서로 시기하며 싸우고, 교회 부흥이 자신의 덕때문이란 걸 내세우며 마치 교회를 하나의 사업으로 대하는 어른들을 보며 어느 순간 여기는 교회가 아니다라는 판단을 재주넘게 해버린거죠. 내가 확신하고 믿는다면 교회같은 건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식으로 내가 믿고 싶은 방식으로, 나만의 방식으로 믿기 시작했던겁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들한테 실망했다, 배신감이든다 등등 여러가지 이유를 대면서 교회를 안나갔지만, 결국은 그냥 벋어나고 싶었던거 같습니다. 주말에 더 놀고 싶고, 일하면 더 돈을 많이 벌고, 잠도 더 잘수있고, 그리고 마치 난 내가 선택한거야, 말을하며 교회를 마음대로 안나가는 친구들이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갓 19살이 된 저는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중간중간에 죄책감이 들어 몃몃 교회를 찾아가 보지만, 이미 죄의 맛에 깊게 중독된 저는 주님곁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 교회도 그런 식으로 다니기 시작한 거였습니다. 드는 죄책감을 못 이겨 폴형(목자님)이 다니니까 따라나 가봐야지 하는 생각에 나왔던 성서침레교회에서, 어느 순간 사람들과 친해지고 편안해져 시간나면 나오는, 그런 생활을 했던거죠. 


그렇게 나왔던 어느 주일날 목사님께서 저를 부르셔서 권유하셨습니다. 생명의 삶을 시작해보는건 어떻니?. 아마 그때였던거 같습니다, 그게 부르심이였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생각이 ‘다시 순수한 믿음을 회복하고 싶다.. ‘. 저는 두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목사님께 대답하였습니다. ‘네 하겠습니다’ 그런데 너무 빠르게 대답을 해서인지 목사님이 조금 당황해 하시더라구요. 오히려 목사님께서 아 조금 생각해보고 말해달라고 하시더라구요. 근데 저는 그 후에도 한 순간도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언제 시작할지 기대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생명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성경을 접해서 인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고, 첫 성경요약을 하는데만 총 4시간이 넘게 걸리더라구요. 제가 호텔에서 일하는데 요즘 가장 바쁜 시기입니다, 하루에 12시간은 기본적으로 근무 할 정도이니까요. 그렇게 일하는 와중에도 하루에 꼭 1시간정도 성경요약을하고 다시 읽고, 고치고 하는게 너무나도 즐거웠습니다. 


생명의삶을 하면서 주님께서 주시는 메세지는 명확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은 채 내 방식대로 내 판단대로만 믿고 살아왔구나. 내가 믿음이라고 생각한건 진짜 믿음이 아니였구나. 기도를 드릴때마다 그동안 지은 죄밖에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뭔가 기도제목이 있어도 회개만 하다가 끝나기 일수였죠. 


그렇게 조금씩 마음 속에 기쁨을 회복하던 중, 예수 영접 모임때 모든게 더 명확해졌습니다. 아무 죄없는 예수님께서 내죄를 씯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고 또 부활하셨습니다. 내가 지은 죄를 모두 용서하셨구나, 내가 지은 죄를 기억하시지 않으시구나, 나를 용서하셔서 나를 다시 부르셨구나 앞으로 하나님께 잘할 일만 남았구나. 


그렇게 저는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진짜로요. 침례로써 그 확신을 증명하는데 지켜봐주시고 축하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저는 제 믿음을 회복시키고 성장시켜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떤 시련이와도 잘 이겨낼수 있도록, 진정한 예배자가 될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