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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몽골목장 황교희 형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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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3주간 한국에서 있었던 일과 10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송파구에 있는 남송교회 평신도 세미나를 통해 하나님과 만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설렘 없던 고국 방문


4년여 만에 고국방문을 계획하고 비행기표를 구매한 건 지난 5월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과 친적, 지인 분들을 만나게 된다는 설렘이 매우 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그 마음은 온데간대 없고 무덤덤해져버린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방문 한 달을 앞두고 있었지만 제 가슴은 이상하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을 앞둔 시점에서 아침에 문자 하나가 왔습니다. 목사님이었습니다. 골자는 오는 1012일부터 14일까지 평신도 세미나가 있는데 참석 가능한지 여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이 문자를 보고 평신도 세미나란 단어 자체의 낯설음을 기억합니다. 아내와 이것에 대해 잠시 통화를 나눈 후, ‘하나님의 무슨 뜻이 있으시겠지…’란 마음으로 그 뜻에 순종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목사님에게 참석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드린 후 저의 마음엔 큰 변화가 찾아 왔습니다. 이번 방문이 단순한 한국 여행이 목적이 아니고 평신도 세미나 참석이 주가 된다고 생각하니, 부모님과 친지들과의 만남은 일종의 보너스라고 느껴지게 된 것입니다. 한국 가는 일정이나 비행기표 등은 같지만 그 마음의 변화는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더 나아가 이것이 지난 5개월 전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평신도 세미나에 가게 된다면 어떤 가정교회 분들을 만나고 또 그 분들과의 만남을 계획하신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시련의 시작


기대감 동시에 저는 걱정도 함께 따라왔습니다. 이제 평신도 세미나가 목적이 된 이상, 영적 싸움을 피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내에게 굳은 의지를 갖자고 서로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떠나는 첫 날부터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됐습니다. 시드니 공항을 가기 위해 픽업 서비스를 부탁했는데, 그 차가 집에 도착하자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아내가 비행기에서 입으려고 준비했던 검정색 바지 하나가 사라졌고, 그것을 찾기 위해 분주해졌습니다. 사실 그 바지는 제가 침대 위해서 발견하고 어느 곳에(?) 두었기에 금방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찾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도 온대간데 사라진 바지는 운전기사 분이 모든 짐을 차에 실었다고 사인을 보낼 때까지도 찾지 못한 것입니다. 저 역시 마음이 급해져 아내에게 그냥 가자며 재촉했습니다. 어쩐 일인지 아내 역시 그 바지를 포기 하지 못하고 계속 찾으려는 모습에 제가 화가나 버렸습니다. 이윽고 다툼이 되어 버렸고, 아내는 한국에 가지 않겠다며 울음을 떠뜨린 것입니다. 저는 그 말에 정신이 번쩍들어 마귀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구나란 마음으로 무조건 미안하다며 아내의 손을 잡고 겨우 리무진에 올랐습니다.

 

그 다툼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드니 공항엔 새로운 전투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새롭게 바뀐 무인 티켓팅 시스템기 앞에서 계속되는 오류 메세지가 저희를 긴장시켰습니다. 안내에 따라 몇 번이나 여권을 스켄해 보였지만 아내와 수아의 그것은 발매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당장 한국행 비행기 탑승이 어려운 것처럼 보이자 다시 하나님께 기도하며 여권을 또 다시 무인 발매기에 스캔하고 또 스캔했습니다. 그 기도의 응답이었을까요. 어느 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무슨 문제가 있냐며 물었고,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녀 역시 몇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같은 결과가 나오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결론은 호주 이민국에 이 두 여권이 신고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더 급해졌습니다. 지난 10여년 간 호주에 살면서 이러한 문제는 하루 아침에 처리가 되지 않는다는 걸 몸소 느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보낸 그 직원은 천사가 되어 자기가 직접 전화해서 해결해 줄까?’라며 우리에게 의향을 물었고, 이내 ‘10분만 기다리면 티켓팅이 가능하다라는 답을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다행히 한국행 티켓을 손에 쥔 저희 가족은 출국 심사를 거쳐 탑승를 기다리게 됐습니다. 잠시후 동생으로부터 저 대신 일하기로 했던 직원 한 명이 몸이 아파 나오지 못했다는 연락을 받게 됐습니다. ‘정말 한국에 갈 수 없는 것인가란 생각을 잠시도 해보기도 했지만, 다시 마음을 추스리고 스케줄 조정을 했고, 하나님께 맡긴다는 기도로 대체를 하며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기도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다

 

자정무렵 홍콩에 도착한 저희는 꺼두었던 휴대폰을 켰습니다. 이내 이곳저곳에서 문자와 메일이 쏟아졌습니다. 저희 회사가 관리하고 있는 한 아파트의 주차장 게이트가 파손되어 거주자들의 자동차가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1년이 넘도록 그와 같은 큰 문제는 단 한번도 없었던 곳이었고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 일이기에 사실 저와 아내는 말 그대로 멘붕이 온 상태였습니다. 그저 한 숨만 나올 뿐이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극도로 예민해진 서로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누구의 탓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전투에 나간 군인처럼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하고 동시에 하나님께 모든 걸 내려놓았습니다. ‘하나님, 저희는 모든 걸 하나님께 맡깁니다. 저희는 처리할 힘이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이 문제는 향후 하나님께서 일정을 최대한 늦쳐 주셨습니다. 문을 고치는 업체에서 관련 자제 부족으로 인하여 당장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게 되면서, 그 건물을 관리하는 저희들의 부재가 이 사건의 핵심 문제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수지는 열감기로 이틀간 고생하였고, 그 감기가 어머님께까지 옮겨지는 상황이 됐습니다. 아내의 라식 수술로 인해 장인장모님이 계시는 공주에 내려가는 걸 미뤄둔 상태에서 한 전화통화는 시련을 이어갔습니다. 아내의 고모이자, 아버님의 여동생의 아들이 곧 결혼하니, 그 예식에 참석하여 모든 친지분들과 인사를 대신하자고 하셨습니다. 일정이 바뀐 탓에 죄송한 마음을 덜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예식이 1014일 오후 1시에 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시간은 저희가 참석하기로 한 평신도 세미나의 마지막 일정인 예배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평신도 세미나를 다녀오신 분들은 알고 계시겠지만 세미나 기간 동안 일체 개인행동을 금하고 있으며 마지막 예배를 참석하지 않을 경우, 세미나 불참으로 수료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저희로서는 그 어느 것도 쉽게 선택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희는 또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술을 잘 끝내고 회복기를 가진 후 드디어 공주에 내려갔습니다. 아버님은 당연히 저희들이 결혼식을 참석하리라 생각하시고 다시 한 번 참석에 관해 물어 보셨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저희에게 지혜를 주셨고,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 그날에 아이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다녀와야 한다는 답변들 드리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은 잠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다가 그러면 전화라도 해드려라…’라는 말을 해주셨고, 저희는 평신도 세미나 참석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됐습니다.

 

마지막 결전

 

가장 큰 관문을 넘겼다는 기쁨(?)으로 인천으로 돌아온 저희는 더 큰 산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심장 주변이 무언가 찌르는 통증을 호소한 것입니다. 그날이 한글날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병원이 휴원인 상태였고, 관련되어 인터넷을 검색하니 심근경색 증상으로 나와 긴급히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게 되었습니다. 응급실에 들어가 몇 가지 검사를 받는 도중 아내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간호사에게 양팔이 부축되어 검사실에 나오기도 했습니다. 정신을 잃었다는 걱정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양 손에 마비증상이 나타나 제 손으로는 펼 수도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었고, 이내 아내의 혀까지 굳어지게 되어 말을 거의 할 수 없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저는 아내를 달래며, 큰 호흡을 유도하고 하염없이 손을 주무르며 하나님께 의지 하자고 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내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써 웃음 짓고 있었지만 다시는 건강한 아내를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마음이 들어 얼마나 하나님을 부여 잡은지 모릅니다. ‘공휴일로 응급실에는 교수급의 의료진이 없기 때문에 당장 입원도 결정할 수 없다는 한 젋은 의사의 답변과 반대로, 하나님은 저희의 기도에 응답을 해주시면서 아내의 손과 혀는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집에 돌아온 아내와 저는 평신도 세미나 이틀을 앞두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며 컨디션 조절에 들어갔습니다. 어머님은 그때까지도 기침 감기 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셨지만 감사하게도 아내의 걱정을 더 하시며 헌신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1012일 평신도 세미나 당일 아침, 저희는 세미나 참석을 위해 막 나가려는 참에 호주에 있던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동생이 교통사고가 났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상황을 들어 보니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당일 모든 고객들에게 업무가 어렵다는 양해를 구하고, 피해자에겐 수리 및 향후 대처에 관해 이해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둘 째 아들이 걱정된 어머님이 당신도 감기로 고생하고 있고, 며느리도 응급실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을 정도로 고통스러운데 굳이 이럴 때 세미나에 가야겠냐며 저희를 만류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마지막 영적 싸움의 시작으로 생각이 되어졌고, 어머님께 미소를 보이며 잘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짧은 인사를 드리고 나오게 됐습니다.

 

드디어 평신도 세미나,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

 

수 많은 일들을 뒤로 하고 남송교회로 가는 길은 매우 순탄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저는 언제그런 일이 있었냐는 드스 설렘 가득찬 마음으로 택시와 버스, 그리고 지하철을 갈아타며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남송교회에서 만난 성도분들과 세미나를 준비해주신 분들의 헌신과 배려는 천국에 가면 이런 느낌이겠구나라는 마음까지 들게 했습니다. 23일간 열정을 놓지 않으신 김명국 담임목사님과 간증을 위해 올라오신 장로님과 안수집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경제적 능력이 아닌 헌신 하는 삶을 인생의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소원도 가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세미나 이틀째 되는 날 한 목장을 탐방하게 됐고, 우리 몽골 목장이 도입했으면 한 것들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장탐방 이후 담임목사님으로부터 대예배시간에 세미나수료 간증을 전화로 부탁받게 됐습니다. 세미나 기간 동안 한 번도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김 목사님이었기 때문에 그 제안에 궁금증이 들기도 했지만 이 역시 곧바로 순종하게 됐습니다.

 

가져간 노트북과 필기 도구 등이 없어 간략하게 휴대폰에 문구를 적어 간증을 준비했습니다. 저의 자리는 맨 앞자리에 배정되어 간증이 있는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집사님의 대표기도 시간이 되었고, 다음이 제 차례였습니다. 두 눈을 감고 기도를 듣으려 하는데 제 마음 한 곳에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이 시간을 위해 그 많은 일들이 있었던 거야, 수고했다라는 마음이 제 가슴속에 밀려 들어와 가득차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1014 1210분 저를 그 시간에 세워 간증할 것을 모두 계획하시고, 5개월 전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하신 것입니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습니다. 앞에서 대표기도하시는 분을 인식하고 입을 막고 울었지만 그 소리는 목사님의 비롯한 주변 모든이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컸고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멈추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 않은 울음은 그 기도가 끝나도록 이어졌습니다. 감정을 겨우 추스린 후 저는 앞으로 나가 처음 보는 성도분들 앞에서 여러분에게 했던 이 이야기들로 간증을 했습니다. 앞서 울음은 떠뜨렸지만 올라가서는 떨림 하나 없이 평신도 세미나까지 오는 여정을 들려드리고 내려왔습니다.

 

돌아 보니 그 수 많은 우여곡절들은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고난이었고, 저에게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이와 같이 험난한 일들이 찾아와도 저희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깊은 뜻으로 이해하고, 그 마음을 순종과 헌신하면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bagu 2018.10.24 07:37
    늘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적인 형제님에게 주신 주님의 선물이라고 여겨집니다. 큰 감동을 안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증문 일찍 올려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