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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고린도전서 15:10
설교자 고요찬 담임목사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때, 과연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복음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고, 기독교 신앙의 중심입니다. 여기에 무엇을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습니다. 십자가와 부활, 이것이 기독교의 두 기둥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증언하면서 수많은 목격자들을 열거합니다. 오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마지막 증거로 자기 자신을 내세웁니다.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던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 사건 하나로, 바울의 인생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박해자가 전도자가 되었고, 인생의 방향과 목적이 180도 달라졌습니다.

 

바울은 이 변화를 설명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돌아볼 때, 결코 자신이 구원받을 만한 자가 아니었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고, 성도들을 옥에 가두었고, 죽음에까지 이르게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자신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주권적으로 찾아와 주셨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원해서 믿은 것도 아니고, 구원받을 만해서 구원받은 것도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로 오늘의 자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을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교만해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열심과 의와 신학이 얼마나 부족했는지를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님을 만난 후 겸손해졌고, 자신을 낮추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를 아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고 말합니다.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고, 수없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고, 생명의 위협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수고조차도 자기 공로로 돌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게을러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은혜에 감사하여 더 충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끝까지 공은 하나님께 돌립니다.

 

바울은 구원만 은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조건과 환경, 심지어 고난과 연약함까지도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가정도, 사명도, 공동체도 은혜이며, 자신을 단련시키는 어려운 상황들조차 하나님께서 자신을 빚어 가시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눈이 열릴 때, 원망은 사라지고 감사가 자리 잡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믿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입니다. 2천 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그 순간, 겉모습은 그대로일지라도 인생의 중심이 바뀌고, 가치관과 목적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전체를 돌아보며 고백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온 것이 내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말입니다. 구원도 은혜요, 삶도 은혜요, 사명도 은혜입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겠다는 고백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처럼, 모든 것을 은혜로 바라보며 끝까지 주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가다가, 마지막에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