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고민한 저희는 어차피 한국에 살지 않을텐데 집을 판 돈으로 시작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이라는 판단에 겁없이 진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초기 2만불을 내고 바로 신랑의 기술심사를 받고 영주권 준비를 시작합니다.
이제 영어 점수차례!! 모든 것은 자기가 해 줄 수 있으니 영어점수만 6점을 갖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치게 된 첫 번째 시험!! 신랑이 별로 공부를 안했다고 하고 첫 ielts를 쳤는데 하나만 5.5가나오길래, ‘아~역시잘하는군!! 조금만더하면되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일단 시드니행이 결정되었기에 비행기표를샀습니다. 그런데 완강히 반대하시던 시부모님들은 집판 돈 믿고 시작하냐며 그럴순 없다고 허락을 안 하셨고 저흰 돈마저 없이 1500만원을 들고 시드니로 왔습니다.
그리고 시드니에 와서 보니 이민세미나에서 만난 이런 사람들을 브로커라 부르며 이렇게 영주권을 취득하는 것은 불법이라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한국 법무사에게 연락을 해보니 자기들은 정식으로 허가를 받고 하는 것이라 완강히 주장하고 영어 점수만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1년만에 저희는 이 돈을 포기하고 새 출발을 마음먹었습니다.
정말 모든 믿는 구석들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들으셨 듯 저의 글에선 하나님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저희가 결정하고 갈등하고 포기하고…그런 상황들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또 저의 학생비자로 호주에 있었기에 전 학교를 다녀야 했고, 동생의 추천으로 아기를 키우면서 쉽게 아침에 가서 출석 체크하고 한 시간 있다 나오면 된다는 그 학교에 등록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등록한 그 해에 그 학교는 감사학교로 선정되어 그 어느학교보다 빡세게 출석을체크하고 숙제를 체크하게 됩니다. 물론 중간에 빠져나올 수 없었죠.
그래서 '전 운이 정말 나쁘네…난 역시 공부 할 팔자 인가봐.' 이렇게 생각하고 어쩔 수 없이 데이케어는 비싸니 하루 50불인 허가 없는 한국식 유치원에 연락을 하고 픽업도 해 준다고 하기에 16개월 아기인 겸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학교를 갔습니다.
그러나 뭐 타고난 성격이 있어 잘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늘 기도는 이렇게 간곡하게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있는 와중에 전 2014년 12월, 예수님을 영접하고 2015년 새해에 첫 침례를 받게 되었고 좀 더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싶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신랑의 일하는 컨디션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결정이 되었고, 급기야 최근에는 아이의 학교 외 수업도 부담이 되어 모두 다 끊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부분들이 겸이에게 가장 미안하게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그렇게 영어시험만 30번이 넘도록, 7년 동안 치니, 저희 신랑이 저의 기도를 듣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에 목사님, 권사님 및 모든 성도님들이 당신을 위하여 새벽마다, 아침마다 늘 기도하고 있음을 알기를…,제발 가족들의 노고를 기억하고 부디 자신이 잘 나서 모든 것을 이룬 것이 아님을 알기를... 그 감사를 기억하길…
본인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길…
하나님께 기대어 마음의 안정을 찾아나가길…
남편과 함께 교회에 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는 저의 기도를 함께 나누고 듣게됩니다.
그러자 이 순간 부터 남편의 변화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시험을 치기 전에 기도를 했다는 말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한 간절한 기도 안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났고, 시험을 치루었고 결과는 모두가 아시듯7.0 이라는 높은 결과로 마무리를 짓게 되었습니다. 또한, 남편은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린다고 본인의 입으로 말하게 되었고, 바로 예수영접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목장에 참여하겠다 다짐을했고, 정말 1년에 세 번정도 참여하면 많이 참여했던 목장에 거짓말처럼 연속적으로 참석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일년에 1-2번 쉬던 남편의 일요일 일정이 몇주동안 싹 빠져서, 주일 예배에도 연속적으로 참석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본인 입으로 침례를 받겠다고 바로 결정을 하고 시험을 치루고는 한 달만에 침례도 받았습니다.
제가 늘 부러워했었던…교회에 온 가족이 올 수 있게 된 순간이 이 날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남편이 영어점수가 나온 후, 하나님과 가까워지고 있는 동안, 영어점수가 나온 순간부터 성질 급한 저와, 성질급한 법무사님, 그리고 또 성질급한 저희 부모님, 시부모님 덕분에 모든 서류들이 3일 만에 시드니로 도착을 했고, 남편은 싸인만 하면 될 정도로 모든 서류들이 바삐 진행이 되어 법무사님은 이민 신청을 바로 진행했습니다. 또한 원래는 요청이 오면하는 신체검사도 기다리지 말고 바로 하라고, 예약도 가장 빠른 날로 잡아주었습니다.
그런데 모두들 아시듯, 저희는 이미 여기서 겸이학비 및 교육비에, 비자 진행에 해당되는 경비 및 비자, 보험 등 매 달, 매 달 엄청난 돈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주권 신청을 할 수있는 경비 마련이 또 다시 고민으로 다가와 매일 매일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목장에서 고민을 털어 놓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날이 되면, 법무사님은 이미 본인의 카드로 수 만불이나 되는 돈을 긁고, 회사에 인보이스를 보내 바로 바로 입금 요청을 했고, 저희는 돈이 있어야 비자 진행이 될 것이기에 딜레이를 걱정하고 고민하고 있는 사이 법무사님의 인사천리 진행으로 저희 돈이 없이 이미 비자는 진행 중이었습니다.
법무사는 11-14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 예상을 하며, 일찍 나오는 사람은 6개월만에도 나올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기적적으로 두달 반만에 리나가 낮잠을 자고 있던 그 순간에 영주권 승인이 났다는 신랑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 너무 실감이 안나서 사람들한테 말하기도 무서웠습니다. 이야기하는 순간 꿈으로 변해버릴까봐…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었습니다.
현실이라는 것을 왜 못느끼냐는듯, 저의 전화는 불이났고, 모두들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시고 축하해 주셨습니다.
전 늘 생각했습니다. 기도하면 이루어진다고? 왜 난 안 이루어질까? 목사님께도 여쭤봤더니 더 간절히 기도해야한다고 하십니다. 대체 어찌해야 기도를 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전 몰랐던 것 이었습니다. 이미 저의 기도는 늘 하나님이 듣고 계시고 하나씩 순서대로 진행이 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영어점수때매 정신이 없는 사이 하나님은 하니씩 진행 중이셨던 것 이었습니다. 제가 왜 늘 제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냐고 삐칠때에도, 아무 말없이 지켜봐 주시고 포용해주신 것을 이제 알게되었습니다.
늘 곁에 좋은 사람들을 주셔서 저희를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게 잘 잡아주시고 계셨습니다.
처음 우리가 우리의 뜻대로 무식하게 진행했던 모든 것을 싹 내려놓게 하시면서 차츰 저희를 내려놓고, 기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하였고, 이제 신랑과 함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배워 나갈려면 갈 길이 멀지만, 이제 나눔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신랑과 배우고, 저희에게 주셨던 이러한 도움의 손길과 기도들, 그리고 아껴주시는 마음들, 그리고 복을 나눠주시는 사랑을 저희도 이제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껏 저희가 호주에서 지내면서 너무나도 많은 섬김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아들, 딸로써 저희를 주님께로 인도해 주신 분들. 더불어 섬겨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여러분들이 섬겨주셨던 것을 본받아 다른 분들을 섬길 수 있는 그런 윤지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이 시간을 빌어 늘 저희곁에서 아버지, 어머니처럼 지켜주신 목사님, 사모님 그리고 저희 가정을 위해 늘 애써주신 이광호 목자님, 김보라 목녀님. 백철호 목자님. 유지혜 목녀님, 황교희 목자님, 정효선 목녀님. 그리고 내일처럼 기뻐해주고 슬퍼해 주시는 멕시코 목장 식구들, 또 맨날 싫은 소리, 힘든 소리 다 들어주는 내 동생 지영이, 교회로 인도해 준 정하언니, 늘 언니처럼 밥 사주러 에핑까지 오시는 강미희 목자님. 또 늘 기도해 주시는 권사님들 성도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너무나도 애쓴 우리 남편 김동혁형제님. 앞으로 당신과 나아갈 길이 요즘 너무나도기대됩니다. 저희의 첫 결혼 생활이 힘들었는데 앞으로 점 점 더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당신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오늘이 순간 너무 행복하네요.
정말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