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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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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장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때 당시 저희 목자님이셨던 곽 사모님께서 이 구절을 읽고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시에  성령의 열매 9가지를 읽으면서 이게 말이 돼?라고 의문을 가졌습니다. 억지로 해도 되지 않을 것을 성경에서는 이것들을 막을 법이 없다고도 하니 참으로 믿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3월 말로 목자로서 목장사역을 한지 2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 성령의 열매 9가지를 과거의 제 삶과 지금의 삶을 나누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안에 살때 내 자신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오늘 이것을 준비하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 사랑
과거: 내 가족을 사랑하거나 간혹 길거리 노숙자를 10불 미만의 금액으로 도와준 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기준은 오직 제 자신이었고 가족을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내 가족을 내 마음대로 조정했습니다. 내가 이런식으로 사랑하니 너도 나랑 같은 식으로 사랑을 표현해라는 식으로 강압적인 결정을 내리곤 했습니다. 과거의 상처가 치유되거나 솔작하게 꺼내지도 못했으면서 나를 이해를 해주지 않으면 결국 화를 내었습니다. 일방적으로 화내어 서로의 관계가 깨지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내 기분이 풀릴때까지 그 상황을 그대로 방치해 버렸습니다. 상대방에게 먼저 사과하라고 윽박 질렀고, 그렇게 말을 들으면 이번에도 내가 옳았다고 확인을 하며 마무리 되었습니다.

현재: 이제는 사랑이란 그 사람이 무엇이 필요한지 노력하려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경청해야 했고 먼저 배우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생각이 더 옳을 수 있다고 나의 의견을 최대한 열어 두게 됐습니다. 또한 포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서로에게 문제가 있어 어려움이 찾아오면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 즉 성령님께 이 문제를 의뢰하고 내 마음의 평화를 찾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도 같은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사과를 먼저 하며 관계를 푸는 것에 더욱 촛점을 맞추게 되었습니다. 목장을 하고 난 이후부터는 내 자신이 먼저 사과하면 마음이 더 편해지면서 사랑의 더 큰 의미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2. 기쁨
오직 나에게 유익이 되어야만 기쁨이 있었습니다. 쇼핑을 한다거나 도박을 해서라도 돈은 따는 것이 이전의 저에게 주는 기쁨이었습니다. 높은 배당의 경기들을 맞추면 마치 신이라도 된 듯 세상을 다 꿰뚫어 보는 것마냥 뿌듯하고 의시댔습니다. 그곳은 아무도 몰라주는 나만의 세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세상이라도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며 자문하면서 스스로를 위안 삼고 살았습니다. 하루에 일을 많이 해서 벌어들은 돈을 계산하며 희열을 느끼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나에게 찾아 오는 만족이 기쁨이 되는 것은 같습니다. 하지만 이전의 것들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내 인생을 단순한 운으로 결정짓는 것들을 맡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하는 일과 목장이라는 사역일이 균형이 맞을 때 가장 뿌듯하고 만족하는 삶이 되며 기쁨이 밀려 옵니다. 그래서 일만 주구장창하는 한 주는 저에게 실패한 주입니다. 반면 시간을 가지고 목장식구나 vip와 교제하면 그것만큼 뿌듯할 수 없습니다. 아니, 내 일은 잘 안되는데 목장식구들이 변화해서 예수님 이야기를 많이 하거나, 기도하며 섬기던 VIP가 예수님을 믿게되는 상황을 보면 정말 기쁩니다.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없는 희열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에서도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의 삶을 나만이 아닌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산다는 것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그 이상으로 쓰임 받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격려하게 됐고, 특히 내 의견 보다는 아내의 의견을 따르는 것 또한 기쁨이 되고 있습니다.

3. 화평
과거에는 내 말을 잘 듣는 것이 화평의 지름길이었습니다. 그것을 벗어난다면 화평은 없었습니다.

지금의 화평이란 내가 희생하는 것입니다. 평화로울 수 있다면 내가 뭉개져도 크게 나쁘지 않습니다. 나와 다른 상대 의견을 따른다고 해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견을 듣고 존중하려는 노력하는 내 자신을 평화롭게 만들게 되었습니다.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 제일 피하고 싶습니다. 그냥 미안하다며 말하고 지는 것이 가장 찾고 싶은 것이 되었습니다. 다툼과 시기 오해 등으로 내 마음이 불편하면 그때부터가 내 삶의 지옥이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4. 인내
내가 인내하는 것을 아주 큰 일이라고 스스로 여겼습니다. 인내하는 폭도 깊지 않고 넓지도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절대 못하는 것이라며 나이기 때문에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도 내뱉었습니다. 하지만 그 인내는 오래 가지 않아 마음을 바꾸는 경우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예전보다 인내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나 혼자라기 보다는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왠만한 것은 인내하려고 하지만 아직도 훈련이 부족해서 인내하지 못하면 예수님께 따지듯이 묻고 나의 의의를 죽여달라고 때도 쓰고 있습니다. 잠시 후 예수님의 달램으로 떼 쓰는 일도 사그러듭니다. 그리고 결국 참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부족한 면을 생각나게 해주시거나 예수님이 겪으셨던 더 큰 고통을 기억나게 해주셔서 제 생각과 입을 다물게 해주십니다. 이 부분은 과거엔 생각도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5. 친절
단편적이고 매우 일시적인 친절함은 있었습니다. 예의가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어쩌다 한번 만나는 분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접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돌아켜보면 오래 만나는 사람도 제한적이어서 별로 없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해야만 합니다. 알고 있던 모르던. 특히 모르는 사람에겐 더욱 친절하려고 노력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이 하나님이 보내주신 영혼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분인데 나의 불친절과 실수로 대할 수 없다는 마음이 강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게된다면 그 보다 행복한 것이 없기에 친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이 일시적이지 않고 억지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솔직함입니다. 허나 나의 친절함이 그 사람의 마음을 다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라면 그거라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몸과 마음이 병든자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친절하게 하셨던 기록이 있듯이 어린 아이들에게 더욱 그럴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6. 선함
과거에 선함이 있었나 싶습니다. 내 이익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사심 없는 도움은 별로 없었고 사심 없는 친절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은 선함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그 행동에 오해를 산다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그들에게 내 마음을 꾸준히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서서히 내 마음을 알 수 있도록 만남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기쁨을 주변 사람에게 선한 에너지로 전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예수님께 의지하며 선한능력으로 다가갈때 그들의 변화를 기대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7. 신실함
내 기분에 따라 모든게 달라졌기 때문에 일괄적인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여기까지 이야기 해보니 저는 정말 제 마음대로 산 죄인인 것 같습니다. 내가 하나님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산 무법자였습니다.

아직까지 신실함은 저에게 부족한 면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다른 것은 나의 기분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지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매우 중요해졌고 특히 성경 말씀은 저를 붙잡고 다시금 나아가게 해주는 원동력이 됩니다. 제가 약속한 것은 최대한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안되면 상대방에게 사과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면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예수님께서 도우신다면 남은 목자 인생에서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8. 온유
온유라는 단어는 생명의 삶공부를 통해 더 많이 듣고 느꼈습니다. 그 만큼 이것은 목장에 나오기 전 제 인생에서 없던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이 하는 행동에도 버릇이 없으면 욱했던 일들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지금은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해서, 그 행동이 기분 나쁘다고 해서 잘 드러내지 않습니다. 저도 인간이기 때문에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대방이 몰라서 그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나를 지배하는, 즉 성령 충만할 때는 더욱 그것이 가능해졌습니다. 그 마음을 다스려주시는 것이 빨라졌습니다. 혼자 그것을 삭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9. 절제
절제도 매우 짧은 것이었습니다. 하고 싶으면 해야했습니다. 부족하면 그것을 채워서라도 해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반대로 하고 싶지 않으면 자존심을 내세워서라도 절대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나를 세우고 내 자존심을 살리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나는 내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고 절제하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절제하게 해주시고 계십니다. 가령 어떤 것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때 이것이 반드시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에 한질문을 하게 하십니다. 어떤 강의를 통해서 그 질문을 구매하기 전 세 번을 묻는 연습을 하게 하셨는데 그때문인지 과거와 비교해 보았을때 저를 위해 구매하는 일이 90% 이상 줄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반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재정을 사용하는 것은 계산해 보진 않았지만 99% 늘어난 것 같습니다. 나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나를 절제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내 자신을 절제한다는 것 하나가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 변화라면 큰 변화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