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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간증
목자
2021.10.21 03:45

하나님의주권에 토달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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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주일저녁에 예배가 끝나고 모처럼 TV를 보면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내에게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TV를 보면서 아내의 통화내역을 들을수 있었다. 바로 아내의 시어머니 바로 나의 어머니이셨다. 그동안 특별한 행사때만 전화를 드렸던 나로서는 아내와의 전화통화소리가 조금씩 새어나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릴때마다 어머니의 현재 감정상태를 귀기울이고 있었다. 눈은 TV를 보고 있었지만 귀는 완전히 그 대화내용에 집중한 나머지 TV내용은 전혀 나에게 들어오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오면 나는 약간의 죄송스러운 마음이 나를 여전히 긴장하게 만든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전화기가 나에게 넘어온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톤정도 가라앉은 상태로 나의 안부를 묻는다. 늘 그랬듯이 ‘우리는 항상 잘 지내요’라는 래파토리 같은 멘트를 하였다. 그리고나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약간은 떨리는듯한 목소리로 넘어왔다.

 

갑자기 큰아들 너가 호주에 산다고할때는 처음에는 무척이나 괘씸하고 싫었는데 지금 돌아보니까 오히려 이게 잘됐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어머니의 입에서 처음으로 내가 호주에서 살고 있는 것이 잘된것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처음에는 우리 가족이 호주에 사는 자체를 반대하시는걸 넘어서 우리가 망해서 한국에 돌아오게끔 기도까지 하셨던 어머니이셨다. 그러셨던 어머니가 지금은 우리가 호주에 너무 잘 적응하고 오랜시간이 지나서 그냥 포기하고 체념하셨던 상태로 계시고 어쩌면 언제라도 우리가 한국에 돌아오기를 표현하지 않은채 기다리고 계시는줄만 나혼자 생각했다. 그것이 나의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되니까 그냥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호주온지 13년이 지난지금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그말한마디가 내가 목장사역을 하면서 처음에 나의 기도수첩에 적은 기도제목중 하나였던 것이 머릿속을 스쳐갔고 그 기도수첩을 찾아보았다. 너무 오래전에 쓴 기도수첩이라서 역시나 아무리 찾으래도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기도수첩에 적었던 기도제목이 13년만에 기도응답이 이루어진 것이다. 난 그동안 잊고 있었다. 나의 입술에서는 항상 하나님의 때에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주시라고 반복해서 기도는 하고 있었지만 정작 항상 그 때를 기다리지 못했던 것은 나였던 거 같다.

 

사실 다들 아시다시피 저의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 가정에 태어난 아이세명다 언어장애 또는 자폐증을 앓고 있다. 사회생활은 물론이고 교회를 잠깐 다니다가도 그 교회로부터 상처만 받고 나오게 되는 일까지 남동생가정에 닥치는 상황은 여전히 기도제목입니다. 하지만 만약에 우리 가정이 호주가 아닌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과연 남동생가정과 평화롭게 지낼수 있었을까에대한 의문을 어머니가 먼저 넌지시 꺼내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사회는 다른사람을 신경써야만 하는 비교의식 때문에 우리집 아이들이 다른걸 떠나서 건강한 것 자체만으로도 비교가되고 자존심이 상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혀서 관계가 좋지 않았을 거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은 충분히 우리가족의 관계를 깨뜨릴수 있는 요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족을 한국에서 호주로 옮기시면서까지 우리 가족의 관계를 살피시고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남동생가족과 어머니 우리가족 서로 의지하면서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고  이처럼 하나님의 방법과 시간은 도저히 내가 침범할 수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실히 경험하였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토를 달지 말자라는 신념을 세울수 있었다.

 

나의 잠재하는 의식속에 여전히 하나님의 침묵하심에 대하여 답답함을 느끼거나 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혼자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것에 대한 답을 이미 주셨는데도 내가 무지하고 찾으려고 하지도 않고 깨어있지 못해서 못얻을때가 많은것이지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쉬지 않으시고 일하시고 심지어는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신다는 시편121편의 기자의 말씀이 크게 와닿았다.

 

 또한 이번에 평세 의전팀의 팀장으로 섬기면서 때론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생각과 감정까지 섬세하게 터치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달전쯤에 락다운상황에서 평세의 꽃인 목장탐방을 온라인으로 결정을 내리고 특별히 목사님께서는 그때당시 연합으로 모이고있는 싱글목장에 이제 평세에서는 각자의 목장을 꾸려서 나누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소식을 듣고 싱글목장에 목자님들은 긴급회의에 들어갔고 그 회의에 희락초원의 조장인 저는 급작스럽게 소환되었다. 대충 이야기를 듣고 zoom으로 회의에 들어갔는데 목사님대리인으로 참석한 나로서는 거의 국회 청문회를 방불케 하였다. 쏟아지는 질문과 자신들이 현재 연합으로 모일수 밖에 없는 현실들을 토로하면서 싱글목장의 특수성을 인정해달라는 눈빛이 역력하였다. 싱글목자님들의 간절한 마음들이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었다. 청년들이 오프라인목장도 재미와 감동이 없으면 잘 모이지를 않는데 많지도 않은 목장을 온라인으로 서로 갈라놓으면 더욱 역효과이고 그나마 여러목장들이 연합하면 그안에서 각 목자님들이 중심이되어서 이 어려운시기에 기존에 있는 목원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섬길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무거운짐을 어깨에 들쳐매고 목사님과 사역부장님께 각자 연락을 드렸다. 사역부장님은 의견을 듣고나서 목사님의견과 싱글목장의 의견에 딱 중간인 2개의 목장씩만 연합하는 의견을 주셨다. 가장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해 주었다.

 

한편 목사님께서는 그 의견을 듣고나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셨다. 싱글목자님들이 현재 상황에 안주하여서 연합목장을 고수하고 개인적으로 VIP를 찾고 관심을 갖는것에 게을리 할까봐 염려하셨던 것이다. 목사님말씀을 듣고나니 그부분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싱글목자들에게는 마음이 넓으신 목사님께서 충분히 이해해 주실거야 라고 호언장담을 하고 나왔는데 실망스러운 눈빛이 눈에 선했다.

 

목사님께서 다시한번 기도제목을 초원조장방에 올려서 기도하고 다시한번 만나자고 하셨다. 그래서 기도제목을 올리고 기도하는데 내 머릿속에 그냥 떠오르게 하신 생각이 있었다. 실제 싱글목장에서 사역하고 있는 목자님 한분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침 새벽기도시간에 그 목자님과 같은 세겹줄로 기도모임이 끝나자마자 같이 회의 참석하자고 하였더니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바로 그목자님은 베트남목장에 김성현 목자님이셨는데 회의때 먼저 현재 싱글목장이 연합으로 모이는 상황들을 설명하였다. 아니 설명보다는 간절한 호소와 설득에 더 가까웠다. 한마디 한마디가 설득력이 있었고 꼭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목사님과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나누어주었다. 그것에 우리 사역부장님이 충분히 공감을 해주시자마자 울보 성현목자님의 눈물이 터졌고 목사님께서도 자신의 의견보다는 싱글목자님들의 마음을 충분히 듣고 오히려 연합으로 모이는 것이 더 좋을거 같다는 의견을 주셨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저로서는 나도모르게 감정이 복받쳐올라 눈물이 났다. 우리가 기도하니 성령하나님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까지도 바꾸시고 일하신다는 확실한 경험을 하게 하셨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시는 목적이 우리로 하여금 주님안에서 같은 생각을 품고 한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하여 달라는 빌립보서 2:2~3절 말씀인 사도바울이 빌립보에 있는 교회에 편지한 것처럼 무슨일을 하든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는 말씀을 경험하기 위한 것임이라 믿고 선포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내의 변화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 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아내는 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항상 남편이 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요즘에 처음있는일이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는거 같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볼때는 난 전에도 그렇게 잘하고 있었는데 아내의 시선에서만 그렇게 보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할 뿐이다. 그래서 나도 똑같이 전에 없었던 아내의 변화를 적어보고자 한다.

 

요즘들어서 아내가 가장 변화된 부분은 아이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들이다. 이상하게도 아이들과 아내가 너무 친해졌고 무서운 엄마보다 친구 같은 엄마의 모습에 아이들이 너무 밝아진 것이 보인다. 엄격하게 자랐던 아내의 확연히 달라진 모습에 너무 감사하다. 바로 이것또한 나의 오랜기도제목이었다. 처음에는 의지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요즘에는 확실히 자연스러졌다. 본인도 자신의 변화에 놀라고 있다. 주님은 이렇게 우리의 생각과 습관에도 관여하시고 바꾸실수 있는 분이심을 경험한다. 결국에는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통하여 우리의 인격까지도 깊숙이 관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수 없다.

 

지난주 설교말씀처럼 인생의 행복의 기준은 관계에 있는 것 같다.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를 동일선상위에 놓으신 것처럼 아무리 우리에게 다른 무언가가 채워지고 넘쳐나더라도 관계가 무너지고 깨진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것처럼 말이다. 부부간의 관계를 깨뜨리지 않는 요소중에 하나가 믿음과 신뢰인거 같다. 나도 마찬가지로 아내가 변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 잔소리하고 정죄하고 기다리지 못했다면 나또한 내가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겠다. 또한 아내에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너는 왜 이렇게 하냐고 비교하고 그것을 정죄했더라면 아내또한 변하지 못했을거 같다. 물론 여전히 서로에게 완전히 100%로 만족하지 않지만 완전한 것보다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주는 노력이 필요할 거 같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는 양과 같다. 바로 앞에있는 것만 보는 근시안인 나로서 우리의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만 듣고 따라간다면 그 길 끝은 분명 낭떠러지가 아니라 주님께서 준비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을거 같다.

 

이 간증을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